대전차자주포가 직사만 한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by 척 키스

 Scherzade님의 치프틴의 전차속으로: 깡통따개, 미국의 위대한 실패작들 번역(링크 새창)보고 떠올라서 마무리짓는 글입니다. 통상 단순 스팩 비교를 통해 미국의 대전차자주포는 맥네어의 아집으로 태어난 저열한 무기 정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만 첫번째 사례에서 기술한 것처럼 본연의 대전차임무, 첫번째와 세번째 사례에서 기술한 것처럼 보전합동전투에서 직접화력지원임무, 세개의 모든 사례에 기술된 것처럼 포병처럼 간접사격까지 아우르는 무기였습니다.


 첫번째 사례는 90mm 대전차자주포 M36을 운용한 607대전차자주포대대의 1944년 12월, 1945년 1월, 2월 기록입니다. 참고서적에 대포병사격까지 실시한 11월 기록도 있지만, 11월 중순에 3인치 대전차포 M5에서 M36 잭슨으로 장비를 변경했고 11월 포탄 사용량은 대전차포쓰던 시절과 대전차자주포로 변경한 이후 사용량을 합쳐놔서 뺍니다.

 1945년 12월, 95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사르강 도강, 지크프리드 라인 공격, 106기병연대와 아르덴 방어에 투입됩니다. 직접 사격으로 3719발의 90mm HE탄, 1209발의 APC탄 소모했고, 간접 사격으로 86회의 화력지원임무 달성하며 1590발 소모합니다. 격파 전과는 8대의 전차(1대의 3호 전차, 6대의 4호 전차, 1대의 5호 전차(역주: 판터), 10문의 75mm 대전차포, 9정의 기관총, 8문의 20mm 대공기관포, 90개의 특화점을 직접사격으로 파괴했으며 포로 획득도 94명 있습니다.

 1945년 1월, 94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아르덴 방어하고, 26보병사단과 94보병사단이 교대한 관계로 배속을 26보병사단으로 변경합니다. 직접 사격 사용량은 미기록이고, 간접 사격은 2510발 소모합니다. 직접사격을 통한 격파 전과는 10대의 전차(3대의 4호 전차, 7대의 5호 전차), 9개의 특화점이 있습니다.

 2월, 95보병사단과 87보병사단에 분할 배속되어 지크프리드 라인 공격에 다시 동원되는데, 역시 직접 사격량은 미기록이고 간접 사격으로 1605발 소모했으며 직접사격을 통한 격파 전과는 1대의 하프트랙, 2대의 말이 끄는 화포, 8정의 기관총, 5개의 특화점이 있습니다.

참고서적: Tank Busters: The History of the 607th Tank Destroyer Battalion in Combat on the Western Front; United States. Army. 607th Tank Destroyer Battalion


두번째 사례는 노르망디 전역에서 8군 휘하 대전차자주포 및 대전차견인포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Tank destroyers not employed in the front lines often found themselves providing indirect fire in support of division or corps artillery. Prior to the invasion, battalions received the training and equipment that enabled them to conduct basic surveys and perform fire direction without outside help. In the course of the fighting in Normandy, 87 percent of the ammunition expended by self-proprlled tank destroyes in VIII Corps was fired in indirect missions. VIII Corps towed tank destroyers, unemployable in driect-support roles, fired 98 percent of their ammunition as indirect-fire artillery.


 대전차자주포 및 견인포들은 최전선에 배치되지 않고 사단이나 군단 포병대처럼 간접사격 지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 이전 대전차자주포 및 대전차견인포대대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 사격 지휘 실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과 훈련 및 장비를 받았다. 노르망디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8군 휘하 대전차자주포대대들은 87%의 탄약을 간접사격 임무를 실시하는데 발사했다. 직접사격 지원 임무에 부적합한 8군 휘하 대전차견인포대대들은 98%의 탄약을 포병처럼 간접사격으로 발사했다.


세번째 사례는 45년 2월 로제강 도강작전시 19군 소속 702(M36), 801(견인포) 대전차자주포 및 견인포대대 운용입니다.

호를 파서 만든 경사로에 위치한 702대전차자주포대대 C포대 소속 M36이 로제강 건너로 장거리 사격을 위한 탄약을 적재 중.

 An outstanding example of tank destroyers employed as artillery occurred in February 1945, when XIX Corps mounted a set-piece two-division assault across the Roer River. XIX Corps called upon 702d(M36) and 801st (towed) Tank Destroyer Battalions, under the cntrol of the 2d Tank Destroyer Group, to reinforce the fire of division and corps artillery. When the crossing began, the towed tank destroyer battalion placed neutralization fire on all known German positions in the assault sector, and three of the M36 platoons dlivered interdiction fire at the rate of on hundred rounds per platoon per hour. Meanwhile, the other six M36 platoons provided direct fire on call from tank destroyer observers who crossed the river with the infantry. When the assault elements passed beyond effective direct-fire range, these platoons also shifted to indirect fire. After three and on-half hours of planned fires, the tank destroyers became available for on-call fire missions designated by a tank destroyer fire direction center collocated with the corps fire direction center. Missions included interdiction, harassment, and neutralization fires. The tank destroyers were prepared (but not called upon) to executer "time on target" fires, rather sophisticated procedures that would result in the shells from every gun arriving on the target at the same time. 


 대전차자주포와 대전차견인포가 포병처럼 운용된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19군단이 두개의 사단을 동원하여 로제강 도강을 시작한 1945년 2월에 있었다. 19군단은 2대전차집단에 지휘를 받는 702대전차자주포대대와 801대전차견인포대대에 사단과 군단 포병의 사격을 지원 할 것을 요구했다. 도강이 시작되자 견인대전차포병대대는 강습지역에 위치한 알려진 모든 독일군 진지에 제압사격을 실시했고, M36 3개 소대는 도강 지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3개소에 소대별로 1시간당 100발의 차단사격을 실시했다. 그동안 다른 M36 6개 소대는 보병과 함께 강을 건넌 대전차자주포 관측반의 요청에 따라 직접 사격을 실시했다. 강습부대들이 직접 사격 유효사거리를 벗어나자  M36 6개 소대들 역시 간접사격으로 전환했다. 계획된 3시간 반의 포격 이후, 군단 사격지휘소와 비슷한 말인 대전차 사격지휘소가 지정되었고 대전차자주포 및 대전차견인포들은 요청사격임무가 가능해졌다. 차단사격, 압박사격 그리고 제압사격 임무가 포함됐다. 대전차자주포 및 대전차견인포들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정교한 절차를 거친 결과 모든 포에 발사한 포탄이 동시에 표적에 도달하는 (비록 요청은 없었지만)동시착탄사격 수행도 준비했다.

참고자료: Leavenworth Papers No. 12: Seek, Strike, and Destroy: U.S. Army Tank Destroyer Doctrine in World War II; Christopher R. Gabel; Combat Studies Institute; 1985; ISBN: 0001953451


※ 사진의 저작권은 미육군이 가지며 사진에 대한 설명은 미국 육군 역사 센터(링크 새창)의 것을 따릅니다.

덧글

  • 쿠루니르 2014/09/28 16:48 #

    한국전에서도 퍼싱으로 곡사하고, 지금도 T-55로 곡사하니 참 유구한 전통이네요
  • 척 키스 2014/09/28 20:06 #

    반대로 자주포로 직사사격하는 것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죠.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네이버 이웃커넥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