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늦은 포스팅] 기억과 망각 : 2차세계대전 후 구 일본군 군인 은급 내용 by 척 키스

 다른 책 시키면서 덤으로 "기억과 망각"을 시켰습니다. 2주전에 책을 받았는데 이제야 포스팅하네요. 대학에 갓 들어가서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아직 취업& 스펙쌓기 경쟁이 심한시절이 아니였습니다.) 2차세계대전 서적(타임-라이프를 이때 처음 접했지요.)들 뒤지러 가서 근처에 있어서 집어든게 인연인 책입니다. 그뒤로 2~3번은 읽고 대강의 내용은 기억해두고 있었습니다만...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장갑냐옹이님 포스팅 "우리동내에서 꺼져라 무장친위대"에 달렸던 로미님 댓글에 답플 달았으니 책도 사고, 포스팅도 하는거죠. 자기가 벌린 일은 직접 처리하는게 당연하고, 블로그가 집이 라면 손님이 남의 집에서 설친 꼴이니...(담배)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전후 전쟁책임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독일과 전쟁책임을 망각하고 자신도 피해자라 생각하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비교, 그리고 '왜 일본이 이렇게 된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주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일독해보시길 바라며, 2차세계대전 후 구 일본군의 군인 은급(恩給 ; 연금이라 보시면 됩니다.)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서 적겠습니다.

 1945년 11월을 기해 군인 은급이 폐지되고, 46년 2월에 예외적으로 상이군인을 위한 은급은 시행됩니다. 아... 승자의 처벌이라고요? 사실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인 은급은 공무원 연금에 비해 납입급이 적고(군인 월급의 1%, 공무원 월급의 2%), 가산년수(쉽게 이야기하서 1년 근무한 사람을 2년 근무했다고 처리하는거죠.)라는 방식을 통해 전쟁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우대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반딧불의 묘의 내용을 기억하시고 "고아는요?" 질문하신다면... 상이군인과 유족인 고아ㆍ과부ㆍ노인은 46년 부터 생활 보호 법에 통합되서 보호받았습니다.

 1951년 미일간에 샌프란시스코협상과 대일평화조약 이후, 10월에 들어서 상이군인과 유족에 대한 보상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원문은 '전상병자 및 전몰자 유족 등의 처지에 관한 협의회의 설치에 관한 건') 이를 바탕으로 군인 은급에 앞서 일단 1952년 4월 30일을 기해(정확히는 4월 1일 부터 소급 적용) '전상병자 전몰자 유족 등 원호법'이 시행되지요. 이 원호법의 목적은 "국가 보상의 정신에 따라 군인ㆍ군속이었던 자 또는 그들의 유족을 원호하는 것" 입니다. 여기서 군인ㆍ군속이었던 자는 상이 군인만을 뜻합니다.

 그럼 군인 은급은 언제 나오냐고요? 사실 저 원호법이 이전에 이미 구상에 들어갑니다만 계급별로 차등 지급하자는 은급국사회보장차원에서 실정에 맞는 지급을 해야한다는 후생성의 논쟁으로 좀 늦어집니다. 결국 은급국의 의견대로 1953년 8월 1일에 공표되지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개정된 은급법은 군인과 군속이 아닌 전시동원 된 사람에 대한 보상은 빠져있거든요. 국가 총동원법에 의한 피징용자들이 1958년에서야 추가됩니다. 독일과의 차이점은 국적조항 있음(일본 국적자 아니면 보상 안 함), 계급에 의한 차별 있음, 공습피해자는 보상 안 함 정도가 되겠습니다. 


Ps : 사실 책에서는 식민지출신자(우리나라, 중국, 대만사람)를 배제하는 국적 조항에 더 중심을 맞췄습니다. 일단 핑백 건 글의 댓글에서 제기 된 사항이 "구제국군 출신 군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는가?" 이였으니 이쯤에서 끝냅니다.

Pps : 그래도 국적조항에 대한 이야기기를 그냥 넘기긴 아쉬우니 살짝 구절인용하고 갑니다. 아래는 국적조항의 불합리성을 이야기하는 구절입니다. (P.62~63)
 1982년 일본 외무성에 의해 조사된 "부상또는 전사한 외국인에 대한 구미 각국의 조치개요"에 따르면  미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서독[당시기준]은 구외국인 병사 등에게 자국민과 거의 동일한 일시금 또는 연금을 지급했다. ~중략~ 세네갈 출신의 한 구프랑스 군이 국제연합 구약위원회에 신청한 내용과 동 위원회의 판정도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프랑스가 1975년부터 연금으로 지불할 금액을 바로 지급하지 않고 거치해 둔 것에 대해 동 위원회는 1989년 4월 프랑스의 조치는 국제 인권규약(B 규약) 26조(평등 조항)에 위반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국적의 변경 그 자체는 다른 취급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연금 지급의 근거는 군무(軍懋)를 제공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세네갈인도 프랑스인도 제공한 군무는 같기 때문에다." (볼드체는 제가 넣었습니다.)

Ppps : 원자폭탄 피폭자는 국적에 상관없이 원자폭탄 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1957년 3월 시행)과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1968년 5월 시행)따라 일본에 체류 혹은 거주한다면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Final Thought : 제가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쓴 게 아니고, 책의 내용을 인용 및 요약한 것이니 논쟁이나 질문은 되도록 사양합니다.

덧글

  • 장갑묘 2009/12/05 17:24 #

    시대정신에 의거한 반일제국주의적 태도 때문인지 몰라도 "46년 생활보호법"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군요.
    여러 면에서 전후 일본의 연금 지급 및 보상은 편파적이고 후진적이군요.
    전후 서독도 나치 육군에게 면죄부를 발부하고 무장 친위대만을 혹독하게 대우하는 등 형평성이 결여돼 있었지만,
    그나마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은 존재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폭 피폭자에 대해서는 형평성이 있는 건 그 만큼 그 고통이 크고
    초민족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어서였겠군요.
    다시 말해, 전쟁은 가해자로서 했지만 원폭 피폭은 피해자로서라는 기준이 적용된 걸로 보이는군요.
    이렇게 생각하니 이것도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군요.
  • 척 키스 2009/12/06 00:36 #

    시대정신에 입각한 전쟁책임을 물은 것 뿐만 아니라, '같은 국민이니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한다.' 라는 시각도 깔려있는듯 합니다. 책에도 언급되지만, 군인은급 폐지시에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 경제과학부장 크레이머(Myrom C. Craner)대령의 성명(?)이 걸작입니다.

    P.43~44 "오해할지 몰라서 말해두겠는데, 나는 노인ㆍ과부ㆍ고아로부터 생활의 터전을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군인이었다는 것 혹은 군인의 유족이라는 이유로 곤궁한 일반 국민에 [비해] 군속(軍屬)을 차별적으로 우대하는 제도를 배제하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은급법의 경우 냉전덕분에 전쟁책임을 제대로 청산 못한 결과로 과거 은급법이 그대로 살아났다고 봐할 듯 합니다. 본서에서 논의의 주제인 국적에 따른 보상배제 문제는 1923년 은급법이 생겨날때 부터 있던 조항이었고(국가에 대한 충성의 댓가이며 국적이 바뀌면 충성도 없다라는 시각이죠.) 거기에 시대상황에 맞춰 자의에 의하지 않은(1925년 4월 28일 발효된 대일평화조약으로) 국적변경조항이 추가된 것 뿐이랄까요.

    재미있는 건 1979년에 발간된 은급상담핸드북의 내용입니다.

    P.55 "(일본국적을 상실하면 은급을 받을 권리가 소멸되고, 재차 일본 국적을 취득해도 수급권은 회복되지 않지만) 평화조약의 발효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본 국적을 상실한 한국인 등의 경우에는 한일특별규정[청구권협정] 효력발생일 즉 1965년(원문엔 쇼와 40년으로 우선 기술) 12월 18일 이전에 귀화하여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평화조약 발효일로 소급해 은급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취급을 하고있다."

    이렇게 보상에 있어서는 국적을 그렇게 중요시하면서... 1952년 10월 스가모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전범중 30명의 식민지 출신(한국인 29인, 대만인 1인)에 대해서는 이미 국적을 상실해서 처벌의 근거가 사라졌음에도 처벌을 내렸지요.

    아무리 봐도 이중잣대가 좀 지나친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일본인들의 "한일협정으로 보상 다 했으니 더 이상 책임질 이유는 없다."라는 시각을 보는 듯 해서 좀 씁슬합니다. 냉전 덕분에 자국민의 죄를 단죄하지 못했고, 학생운동을 통해서도 과거에 대한 성찰을 못 했으니 형평성의 결여가 타국민을 향해서 돌려졌나봅니다.(담배)

    Ps : 냉전으로 동경재판이 흐지브지하게 끝났고(대표적인 예가 천황의 면책, 731부대와 거물 정치인의 석방이죠.), 희생자 가족들의 충격을 문제로 인육식 문제도 안 다루고 넘어가버렸으니 연합국의 책임또한 있다고 봐야겠습니다만... 더 큰 문제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자위를 통해서 전후 역사인식 자체가 비뚤어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Ps : 내가 잘못했으니 손해를 감수한다라는 면이 없는 것을 보면 전쟁도 원폭 피폭도 모두 피해자라는 인식이 기준인듯 합니다.
  • vod4 2009/12/09 15:21 #

    응? 이글루 기동 하고 계셨습니카;;

    Bheaven 입니다 _~_
  • 척 키스 2009/12/09 23:05 #

    오래간만입니다.
    사진링크용으로 이글루 쓴지는 오래됐고, 글쓰기 시작한지는 좀 됐습니다.
    먹고사니즘으로 캡파 들어갈 짬이 안 나는군요. ;ㅂ;
  • 2009/12/11 15: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瑞菜 2010/02/04 14:57 #

    결국 수박먹다 죽은 여동생만 불쌍하게 되었군요. 오빠는 살아남았으니 어떻게 뭔가 나올텐데.
    예전에 일본에 전쟁보험이란 것이 있던답니다. 그런데 전쟁이 격화되면서 보험사가 난색을 표시해 흐지부지 되었다 하더군요.
    아, 야구선수 장훈 아저씨도 피폭수첩을 가지고 있다지요.
    "일본에서 유일하게 피폭수첩을 가지고 있는 프로야구선수"였답니다.
  • 척 키스 2010/02/07 23:01 #

    제가 이야기 하고자하는 바는 현재 일본의 보상 체계도 그네들의 역사 인식 만큼이나 비뚤어져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같은 전범국인 독일과 비교해봐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고요.

    PS : 기회가 닿으신다면 한번 저 책을 일독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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